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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 호텔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은 무엇일까?

by 농말이 2022. 6. 25.

안녕하세요. 오늘은 양자역학 호텔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은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알 수 없는 공간에 호텔이 하나 있습니다. 길을 잃은 부부는 다행이다 싶어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호텔 입구에 이상한 규칙이 붙어 있습니다. “어떤 방이든 남녀 각각 한 명씩 투숙할 수 있습니다. 남자 혼자 투숙, 여자 혼자 투숙, 남녀 한 쌍이 투숙할 순 있어도 남자 둘, 여자 둘이 투숙할 순 없습니다.” 

 

부부는 자신들에겐 별 문제가 아니지만 가족이나 친구 단위 여행객들에게는 이상한 규칙이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상한 규칙을 정한 쪽은 호텔이 아니라 호텔을 찾는 손님들이었습니다. 이 호텔의 손님들은 동성끼리 아주 배타적입니다. 남성은 남성을 배척하고 여성은 여성을 배척합니다. 

 

얼마나 배타적인지 아빠와 아들도 한 방을 쓰지 않습니다. 엄마와 갓난 아기 딸도 각방입니다. 사실 이 호텔의 손님들에겐 아빠와 아들, 엄마와 딸의 구분이 없습니다. 남성은 모두 똑같이 생겼고 여성도 모두 똑같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단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완벽히 똑같습니다. 부부는 먼저 투숙한 손님들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손님들이 부부와 완벽히 똑같았습니다. 이 호텔의 이름은 파울리입니다. 

 

네 파울리 호텔의 손님들은 전자를 비유한 것입니다. 전자는 원자의 구성 성분이며 원자핵 주위의 공간을 차지하는 입자입니다. 전자가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은 독특합니다. 오늘은 전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독특하고 이상한 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파울리 호텔의 투숙객들처럼 세상의 모든 전자는 완벽히 똑같습니다. 

 

먼 우주에 있는 전자도,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전자도 100% 똑같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전자는 두 개의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전자와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전자, 이러한 전자의 성을 물리학에서 스핀이라 부릅니다. 그렇다고 전자가 지구본처럼 빙글빙글 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스핀은 각운동량을 말합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시계 방향으로 스핀하는 전자에는 위 방향의 화살표가 달려있고, 반대 방향으로 스핀하는 전자에는 아래 방향의 화살표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이를 각각 스핀업 전자와 스핀다운 전자라고 말합니다. 파울리 호텔로 치면 남성과 여성이 되겠네요. 파울리 호텔의 투숙객이 전자라면 파울리 호텔은 물질에 해당합니다. 물질은 세상 만물을 이루는 재료입니다.

 

물질은 원자를 조합해서 만들어졌으며,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묶여 있는 원자핵과 그 원자핵을 맴도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결국 모든 물질 속에는 양성자의 개수만큼 수많은 전자가 있는 셈입니다. 각각의 전자는 고유한 번호가 붙어 있는 방에 투숙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이는 모든 물질은 일종의 파울리 호텔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파울리 호텔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아보겠습니다. 호텔에 손님이 들었으니 방배치부터 해야겠죠.

 

파울리 호텔에 방이 열 개만 있고 손님들도 열 쌍씩만 있는 경우라면 간단합니다. 각 방에 남녀 한 쌍씩 들어가면 됩니다. 만약 남전자 하나가 방을 나와 복도를 서성인다 해도 엉뚱한 방에 들어갈 일은 없습니다. 빈자리가 있는 방은 그가 원래 묵었던 방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남전자 두 명이 동시에 복도에 나왔다면 어떨까요?

 

그래서 실수로 방을 바꿔 들어갔다면요? 인간 세계라면 큰 소동이 벌어지겠지만 전자의 세계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남전자는 완벽하게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여전자 입장에선 방을 나갔다 들어온 남전자가 자기 파트너인지 옆방 아저씨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전자끼리 방을 바꾸어도 알 길이 없습니다. 파울리 호텔은 범전자적 사랑이 실현되는 곳입니다. 이번에는 1층에 방 세 개, 2층에 방 일곱 개가 있는데, 투숙객은 다섯 쌍이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제 방이 남아도니 방배치를 고민해야 합니다.

 

파울리 호텔에는 엘리베이터나 짐꾼이 없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위층으로 가려면 고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자는 대단히 게으른 존재입니다. 전망 좋고, 가격 싸고, 이런 방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기를 쓰고 아래층부터 차지하려고 합니다. 1층 방이 다 차면 2층, 2층이 다 차면 3층, 이런 식으로 차곡차곡 채워 나갑니다. 파울리 호텔의 층수는 전자의 에너지를 말합니다. 낮은 층에 전자가 많이 머물수록 물질의 총에너지는 낮아지고 그 물질은 안정적인 상태가 됩니다. 게으른 전자는 언제나 낮은 에너지 상태, 즉 안정적인 상태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전자의 게으른 속성에 따라 1층은 세 쌍이 방들을 꽉 채우고, 2층은 나머지 두 쌍이 투숙하게 되었습니다. 2층은 네 개의 전자가 모두 각방을 써도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빈방이 생겼으니 전자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전자가 물질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을 향해 흐르는 현상을 ‘전기가 통한다’라고 말합니다. 전기가 통하는 물질을 우리는 도체라고 부르죠. 반대로 모든 방이 꽉 차서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을 부도체라고 부릅니다.

 

초등학교 때 우리는 도체와 부도체를 판별하는 실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물질에 건전지를 연결해서 꼬마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도체, 안 들어오면 부도체였죠. 파울리 호텔로 비유하자면 건전지를 연결하는 행위는 호텔을 살짝 기울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호텔이 한쪽으로 기울면 게으른 전자들은 같은 층에서도 더 낮은 방으로 가려고 데굴데굴 굴러갑니다. 전자가 움직였으니 전류가 흐른 것입니다. 물론 만실이 되면 아무리 건물을 기울여봐야 손님들이 꼼짝달싹 안 합니다. 나무, 유리, 고무 같은 것에 아무리 건전지를 연결해봐야 불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입니다.

 

1925년, 오스트리아 태생의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는 이러한 전자의 배타성을 정리해서 세상에 발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자역학의 기틀을 마련한 파울리의 배타원리입니다. 파울리의 배타원리는 같은 해에 발표된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 관계식과 함께 양자물질이론의 초석으로 평가받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은 호텔의 설계도에 해당합니다. 몇 층에는 몇 개의 방이 들어가고, 층과 층 사이의 간격은 얼마고, 이런 걸 결정해줍니다. 한편 파울리의 배타원리는 호텔을 운영하는 방식을 결정합니다. 파울리 호텔의 운영 방식을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원자 기체가 담긴 용기를 한번 가열해볼까요? 에너지 최소화 상태의 기체를 가열하는 것은 마치 호텔의 난방을 뜨겁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손님들은 덥다면서 시원한 방으로 바꿔달라고 난리입니다. 7층까지 꽉 차 있던 파울리 호텔에 군불을 때면 손님들은 8층, 9층으로 옮겨 가기 시작합니다. 물리학에선 이런 상황을 들뜬 상태라고 부릅니다. 들뜬 상태가 진정되면 전자들은 다시 아래층 방으로 내려오려고 합니다. 전자의 게으름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올라갈 때는 조용히 올라갈 수 있지만 내려올 때는 그러지 못합니다. 전자들이 내려올 땐 복도 중앙에 난 구멍을 통해 쿵하고 떨어져야 합니다. 별난 일이지만 파울리 호텔의 설계가 원래 그런 거니 어쩔 수 없습니다. 쿵소리는 제각각입니다. 3층에서 1층으로 떨어질 때 소리가 다르고 2층에서 1층으로 떨어질 때 소리가 다릅니다.

 

층마다 간격도 달라서 똑같이 한 층씩 떨어져도 소리가 다르게 납니다. 소리가 얼마나 크고 정확한지 호텔밖에서 들으면 손님이 몇 층에서 몇 층으로 떨어졌는지, 그 호텔이 어떤 층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 세계에서 전자는 쿵소리 대신 빛을 냅니다. 전자가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질 때 다양한 색깔의 빛을 내는 것입니다. 이 빛을 잘 분석하면 그 물질이 어떤 물질인지, 그리고 그 물질 속에 있는 전자의 에너지 구조가 어떤지를 역추적할 수 있습니다. 물질로부터 발생하는 빛을 분석해서 물질의 성질을 역추적하는 과학이 바로 분광학입니다. 19세기 유럽의 과학자들은 분광학 기술을 창조하고 개선해 나갔습니다.

 

자석을 가까이 대면 남전자와 여전자의 쿵소리에 차이가 난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덕분에 전자가 몇 층에서 몇 층으로 떨어졌는지 뿐만 아니라 남전자와 여전자 중 무엇이 떨어졌는지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물질들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소리는 양자역학이라는 언어로 쓰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20세기 양자역학의 대발견은 19세기 중반부터 차근차근 쌓아온 분광학적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산물입니다. “모든 자리에는 각 성별의 전자가 하나씩만 앉을 수 있다.” 파울리의 이 단순한 배타원리처럼 자연은 최대한 단순한 원리를 적용해 문제를 해결합니다. 만약 전자가 조금 덜 배타적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서 한 방에 남전자 둘, 여전자 둘도 허용되었다면요? 그랬다면 만실이 되어도 전자들은 우루루 옆방으로 이동할 겁니다. 부도체는 사라지고 세상 모든 물질이 도체로 바뀝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전기에 감전되는 끔찍한 삶을 살았을 겁니다. 번개라도 치는 날이면 세상 만물이 모조리 피뢰침으로 변해 번개를 맞았겠죠.

 

세상은 전기뱀장어만 살아남은 곳이 되었을 겁니다. 전자의 배타성은 세상을 도체와 부도체로 구분해서 물질세계에 질서를 부여해주었습니다. 전자의 배타성은 자연계의 가장 밑바탕에서 단순성의 원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파울리 호텔의 이상한 규칙 덕분에 우리는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북툰이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양자역학 호텔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 포스팅 마칩니다.